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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이 19년 만에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지난 26일 서울 경희대학교 평화의전당에서 제36회 청룡영화상이 열렸다. 시상식의 꽃인 여우주연상은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안국진 감독) 이정현에게 돌아갔다. 영화 '꽃잎'(장선우 감독)으로 신인상을 받은 이후 19년 만의 트로피다. 이정현은 감격에 겨워 오열했다.



19년 전 '꽃잎' 이정현의 등장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5월 광주의 비극을 온몸으로 맞이한 채 결국에는 미쳐버리고야 마는 소녀를 연기한 작고 마른 17세 신예 여배우는 등장과 함께 평단과 대중을 들썩이게 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충무로는 이정현의 광기의 연기력을 모른 척 했다. 이정현의 파격적인 연기력을 공포영화, 스릴러에만 한정지었다. 실제로 '꽃잎' 이후 이정현이 가장 많이 받은 시나리오 역시 바로 공포영화였다고. 그러는 사이 이정현은 가수로, 중국으로 고개를 돌렸다. 



연기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지내오던 이정현이 다시금 시동을 건 것은 박찬욱 감독 덕분이었다. 2010년 박찬욱, 박찬경 감독의 스마트폰 영화 '파란만장'을 시작으로 해외에서 인정받은 '범죄소년'(강이관 감독), 1700만의 선택을 받은 '명량'(김한민 감독)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묵은 연기 갈증을 해갈하기 시작했다. 물론 '명량'에서는 캐릭터의 쓰임이 다소 아쉽긴 했으나, 말 못하는 정씨 여인을 연기한 이정현의 열연만큼은 빛났다.




박찬욱 감독의 추천으로 뛰어든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열심히 살면 행복해질 줄 알았던 수남의 파란만장한 인생 역격을 그린 영화다. 이정현은 자신의 손재주를 남다른 방식으로 사용하는 생활의 달인 수남 역을 맡아 대체 불가한 광기의 연기를 펼쳤다. 아이처럼 해맑다가도 일순간 독기를 뿜어내는 눈빛이 19년 전 강렬했던 '꽃잎'을 떠올리게 했다. 작은 체구에서 쏟아져 나오는 이정현의 열연만으로도 스크린이 꽉 찼다. 영화는 전국 관객 4만3000명이라는 아쉬운 흥행 성적을 냈지만 평단의 평가는 호평 일색이었다.  




이정현은 이 영화에 노개런티로 출연한 것도 모자라 스태프 밥값까지 사비로 지원했다. 그저,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조금이라도 따뜻한 환경에서 일하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단다. 이정현은 청룡영화상 수상 직후 "너무 작은 영화라 상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라며 "앞으로도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다양성영화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라고 눈물을 흘리며 당부했다. 



이정현의 19년 만의 트로피가 반갑다. 그 트로피가 "너무 작은 영화"로 받은 것이라 더욱 반갑다. 앞으로도 제2의 이정현, 제2의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가 탄생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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